신을 버린 철학자, 스피노자가 찾은 행복의 심리

무엇이든
자연에 반하는 것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며,
이성에 반하는 그 모든 것은
불합리하다.
1. 무엇이든 자연에 반하는 것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행복하고자 하는 본능적 방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 역시, 인간이 참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는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는 우주, 세계, 자연법칙 자체가 곧 신이라는 범신론(pantheism)을 주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스피노자는 당대에 널리 퍼져 있던 초월적 신 개념을 거부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초월적 신'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 수 없으며, 오히려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자연의 인과법칙을 신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보다 쉽게 풀어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가 아는 사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은 신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창조물이 아니다.
- 성경은 신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쓰인 것이다.
- 신은 감시하거나 기대하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으로 스피노자는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하고, 영원히 추방되는 운명을 겪습니다. 언뜻 보면 그는 무신론자의 대변인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여전히 신을 믿는 유신론자임이 드러납니다. 다만, 그가 믿는 신은 기존의 신 개념과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 신은 우주 자체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법칙이다.
- 신은 조건 없이 존재하며, 스스로 이유가 되는 진리이다.
-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없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스피노자는 기도의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도는 다음과 같은 요청을 담고 있습니다.
"내일 시험을 잘 보게 해주세요."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하지만 스피노자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기도는 자연법칙에 반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이성에도 반하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는 오히려, 우주와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참된 기도의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자연을 거스르는 욕망을
신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2. 이성에 반하는 그 모든 것은 불합리하다
스피노자에게 자연은 단순한 풍경이나 배경이 아닙니다. 자연은 곧 신이며, 질서이자 법칙이며, 유일한 실체입니다. 따라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신을 거스르는 것이며, 이는 이성에 반하는 불합리(absurd)한 행위가 됩니다. 영영사전에서 'absurd'란, "이치에 맞지 않아 터무니없고 비판받아 마땅한 것"을 뜻합니다. 이는 스피노자가 느꼈던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담아내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논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합리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은 자연에 적합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신의 뜻에 가까워지고, 윤리적이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하나의 종교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반면, 그를 파문했던 유대교는 현재 약 1,500만 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뿌리로 삼은 아브라함계 유일신교(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전 세계적으로 40억 명 이상의 신자를 두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역사 속에서 실패한 듯 보입니다. 아마도 스피노자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 감성, 즉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기댈 때 느끼는 심리적 안도감'을 간과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성은 힘이 강하지만, 감성은 때로 그보다 더 무겁게 인간을 이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스피노자의 시야를 빌려 우리의 삶을 내려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거슬러 신에게 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일어나는 일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불합리한 욕망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지? 스피노자가 남긴 지혜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 세계를 통제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