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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소유보다 경험이 더 행복한 이유

by 심리학자 이선경 2025. 4. 27.

 

"진짜 행복은 사는 물건이 아니라, 사는 경험에 있다."

여러분은 돈을 어디에 쓸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시나요? 물건을 살 때일까요, 아니면 특별한 경험을 할 때일까요? 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와 아밋 쿠마르(Amit Kumar)는 이 질문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2015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물질적 소비보다 경험적 소비가 더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심리과학적으로 밝혀냈습니다. 오늘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왜 경험이 소유보다 우리를 더 오래 행복하게 만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인간은 '쾌락 적응'하는 존재입니다

길로비치와 쿠마르는 "물질적 소유는 시간이 갈수록 감정적 가치를 잃는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물건을 살 때는 행복감이 크게 솟구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해지는' 존재입니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릅니다. 갖고 싶었던 가방, 신발 같은 것들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스크레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스크레치 나도 괜찮은 가방과 신발이 되고 맙니다.

 

쾌락 적응이란, 어떤 긍정적(또는 부정적) 사건이 일어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감정 상태가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 신경학적 관점:
    뇌는 새로운 자극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지만,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신경 반응이 점점 약해지는 신경 습관화가 일어납니다. 즉, 새 물건을 가졌을 때 뇌의 보상 시스템(특히 도파민 경로)이 활성화되지만, 반복 노출되면 뇌는 이를 '평범한 배경'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 진화심리적 관점: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변해도 너무 오래 한 감정 상태에 머무르면 위험할 수 있었기에, 인간은 긍정적 사건에도 결국 '적응'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새로웠던 물건 구입에 점차 적응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적으로 생존에 유리했던 매커니즘의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물질적 소유는 본래부터 시간이 갈수록 '감흥 없는 기본값'이 되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반대로 왜 경험은 쾌락 적응을 덜 일으킬까?

경험은 물질에 비해 쾌락 적응이 덜 발생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변동성:
    경험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적·정서적 요소를 수반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여행이라도 날씨, 사람, 예상치 못한 사건 등으로 인해 매 순간이 다릅니다. 변화하는 자극은 뇌의 주의를 계속 유지시켜 쾌락 적응을 방해합니다.
  • 인지적 재구성: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이 해석하는 방식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험은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그때 참 잘했지"라며 긍정적으로 재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런 인지적 가공 과정이 경험을 '진화'시킵니다.
  • 사회적 공유:
    경험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떠올려지기 때문에, 감정 반응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반복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즉, 경험은 변화성, 인지적 재구성, 사회적 공유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물질처럼 쾌락 적응을 덜 일으킵니다.

 

 


 

 

3. 경험은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줍니다

심리학에서는 자기 서사(self-narrative) 이론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며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 재료는 '내가 겪은 사건들'입니다. 여행, 공연, 도전과 같은 경험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자기 인식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반면, 물질 소유는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방식이 제한적입니다. 아이폰 최신버전을 갖고 있다고 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용기를 내어 떠난 워킹 홀리데이나 어학연수 같은 경험은 '모험심 있는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경험은 내러티브적 자아를 강화하고, 자기 이해를 깊게 만듭니다.

 

 


 

 

4. 경험은 행복에 필수적인 관계를 촉진합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공유된 경험은 개인 간 친밀감을 크게 높입니다. 같은 이벤트를 함께 겪는 것은 '우리'라는 정체감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어도,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유사성'이 상승합니다. 그러면서 경험을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은, 행복의 호르몬 중 하나인 옥시토신 분비(신뢰와 유대감의 호르몬)를 촉진합니다. 즉, 단순히 물건을 공유하는 것보다, 경험을 함께 공유할 때 인간관계는 훨씬 깊어집니다. 길로비치와 쿠마르의 연구에서도, 경험을 통한 사회적 연결이 물질 소비보다 훨씬 강력하게 긍정적 정서를 촉진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어디에 돈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참고자료

Brickman, P., & Campbell, D. T. (1971). Hedonic relativism and planning the good society. Adaptation-level theory: A symposium.
McAdams, D. P. (2001). The psychology of life storie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5(2), 100–122.
Gilovich, T., & Kumar, A. (2015). We’ll always have Paris: The hedonic payoff from experiential and material purchases. Journal of Consumer Psychology, 25(1), 166–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