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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걸음걸이 속도가 나의 행복을 좌우한다면?

by 심리학자 이선경 2025. 2. 28.

좀 천천히좀 걸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도는 정말 다릅니다. 바쁜 출근길에 빨리 걸으며 앞사람을 추월하는 사람, 공원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걷는 사람, 심지어 목적 없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까지. 그런데 혹시 걸음걸이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의 만족도, 스트레스 수준, 심지어 건강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이 걸음걸이를 성격이나 생활 방식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심리학 연구에서는 걸음걸이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빠르게 걷는 습관과 높은 스트레스의 관계, 느리게 걷는 사람들의 행복도가 높은 이유, 그리고 걸음걸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방법까지 심층적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

 

 


 

 

빠른 걸음과 스트레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빠르게 걷는 사람들은 느리게 걷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고,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경향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빠른 걸음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우리 몸이 지속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이는 우리 몸을 '투쟁 모드'로 전환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높아지며,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런 신체 반응은 즉각적인 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불안, 번아웃, 신체 피로, 그리고 삶의 만족도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빠른 걸음도 스트레스의 반응의 일부분일 수 있고, 반대로 빠르게 걸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내 몸이 투쟁모드가 되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걸 수도 있죠.

 

 


 

 

느린 걸음과 삶의 만족

반대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더 여유롭고 안정된 심리 상태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느린 걸음걸이가 부교감신경계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교감신경은 몸이 휴식하고 회복하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이 신경이 활성화되면 심박수가 안정되고, 혈압이 낮아지며, 소화 기능이 개선되는 등 신체가 긴장을 푸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생리적 변화 덕분에 천천히 걷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퇴근 시간이어도,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도심 속 피어있는 작은 꽃으로부터, 밤 하늘 한 가득 떠있는 보름달로부터도 행복함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왜 빨리 걸을까?

"빨리 걷는 것이 생산적인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지런한 사람 = 바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빠르게 걷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키보드를 우다다다 두들기는 소리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요. 특히 강남-선릉-역삼과 같이 직장인이 포진한 곳에서는 빠르게 걷고 빠르게 먹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기도 합니다. 길 한복판에서 느릿하게 걷고 있으면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답답해하며 앞지르거나, 심지어 짜증을 낼 수도 있구요.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압박이 누군가의 걸음걸이 속도를 높이게 되고, 결국 생물심리학적 연관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높이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걸어야 할까?

마음챙김 걷기 (Mindful walking)를 종종 해보세요. 마음챙김 걷기 현재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며 걷는 훈련입니다. 먼저 속도를 의식적으로 늦추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됩니다. 특히 걸을 때마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을 느껴보고, 발뒤꿈치에서 발가락으로 무게가 이동하는 과정도 관찰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연습이 되면, 사실 빨리 걸을 때도 하체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달리면서도 하게 됩니다. 이를 마음챙김 러닝 (Mindful Running)이라고 합니다.

 

호흡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 호흡은 10% 천천히 걸을 때와 10% 빨리 걸을 때의 호흡이 다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하죠. 주변 환경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도 좋습니다.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느낌, 새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 버스가 빵빵대는 소리, 땅의 울퉁불퉁한 질감까지 인식하면서 오감을 깨웁니다.

 

이렇게 걸으면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걷는 동안 내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바람을 느끼고 있다는 것, 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면서 안정감도 느끼게 될테니까요. 

 

특히 관련 연구에 따르면 도시에서 걷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천천히 걷는 것이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와 삶의 만족도 증가에 더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저도 서울로 출퇴근 하던 직장인 시절에는 차가 덜 막히게 아침에 1시간 일찍 근무지로 출근해서 근처 공원을 크게 30~40분씩 자주 걸었습니다. 

 

 


 

 

 

빠르게 걷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목표 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야죠. 하지만 매번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걷는 습관이 스트레스와 삶의 만족도 저하와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것은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찾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연결성을 기억하면서 오늘 조금 천천히 걸어보면 어떨까요?

 

 


참고자료

Wienke, L., & Hirsch, J. (2020). Associations between walking speed, stress, and life satisfaction: A population-based study. Journal of Behavioral Medicine, 43(5), 745-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