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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벤저민 프랭클린이 알려주는 ‘살아 있는 시간’의 조건

by 심리학자 이선경 2025. 5. 7.

일하는 자는 행복한 자요, 한가한 자는 불행한 자다.
It is the working man who is the happy man.
It is the idle man who is the miserable man.

 

벤저민 프랭클린 (1706~1790)


1. 일하는 자는 행복한 자요,

벤저민 프랭클린은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넓은 지평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미국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헌법 제정에 기여한 정치가였고, 피뢰침과 이중초점 안경을 발명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도서관, 병원, 소방서, 우체국 등 수많은 공공 인프라를 설계한 사회개혁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 특출난 배경 없이도, 독학과 관찰, 끊임없는 실천으로 자신의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2학년 중퇴에 불과했지만, 그의 사유와 실천은 시대를 넘었고,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 인간의 쓸모에 대해 그는 늘 한 발 앞서 질문했고, 그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힘이 그를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그 답이 ‘일의 태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늘 한 가지 질문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누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


프랭클린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유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미의 실현’이자 ‘삶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봉사, 불편을 덜어주는 발명, 공동체를 위한 제도 설계까지.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타인을 위한 일’로 확장시켰고, 그것이 곧 그의 삶을 무게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의미를 외부에서 찾습니다. 성공이나 보상, 타인의 인정 속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프랭클린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가 말한 ‘행복한 자’란 단지 일을 하며 바쁜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2. 한가한 자는 불행한 자다.

 

여기서 ‘한가하다’는 표현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현대인의 삶은 지칠 만큼 바쁘고, 진정한 쉼을 갈망합니다. 따라서 프랭클린의 문장을 표면적으로 해석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명언 속 'idle'은 단순히 시간이 남는 상태가 아니라, 무의미하게 방치된 시간, 의욕 없이 흘려보내는 삶의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편에 '쓸모 있는 존재이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 갈망은 누군가의 인정을 넘어서, 자기 삶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집니다.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은 그 존중을 무디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에게도 거리감을 느끼게 합니다. 프랭클린은 바로 그 지점을 경고하고 있는 듯합니다.

 

진정한 쉼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삶에서만 비로소 깊은 회복이 됩니다. 반면, 방향 없는 게으름은 마음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결국 자신이 삶에서 점점 사라지는 느낌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경쾌하게 선언합니다.

의미 없이 멈춰 있는 사람은 결국 불행해진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 명언은 단순한 근면의 미덕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살아 있는 시간”에 대한 존중입니다. 누구나 한 사람으로서 일상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일’을 가질 때, 그 삶은 자신만의 무게와 온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쉼 역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만 진정한 쉼이 됩니다. 방향이 없을 때, 시간은 무겁고 자신은 작아지지만, 방향이 있을 때, 비록 속도가 느려도 삶은 단단히 중심을 잡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하루는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나는 ‘일하는 자’일까, ‘한가한 자’일까. 우리에게 한가함은 어디까지가 휴식이고 어디까지가 게으름일까? 그 물음 속에, 우리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