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

나이가 들면 정말 호기심이 줄어들까? 심리 연구 결과

by 심리학자 이선경 2025. 5. 9.

 

 

메가 분석 결과
중년 이후에 특정 주제에 대한 호기심이
증가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호기심을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깁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 알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갈증, 시도하고 싶은 충동은 흔히 청춘의 특권처럼 이야기됩니다. 반면, 중년 이후의 삶은 관심의 폭이 줄어들고, 도전 욕구도 감소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 피로를 느끼는 시기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 연구는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듭니다.

 

 


 

 

2025년 5월, PLOS ONE에 게재된 Whatley 박사 연구팀의 논문은 나이가 들어도 특정한 형태의 호기심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미국과 유럽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여 ‘나이와 호기심의 관계’를 메가 분석(Mega-analysis) 기법으로 정밀하게 검토하였습니다. 메가 분석은 개별 참가자의 데이터를 통합하여 보다 세밀한 통계적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입니다. 

 

 


 

 

연구에서는 호기심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는 특성 호기심(trait curiosity)입니다. 이는 한 개인이 전반적인 삶 속에서 새로운 것을 얼마나 자주 추구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늘 새로운 정보를 알고 싶다"는 식의 일관된 성향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상태 호기심(state curiosity)입니다. 이는 특정 상황이나 자극을 만났을 때 순간적으로 유발되는 호기심으로, 예컨대 흥미로운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왜 이게 이렇게 재밌지?"라고 느끼는 일시적이지만 강렬한 호기심을 뜻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호기심인 특성 호기심은 40대 이후부터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전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탐색하려는 성향이 다소 약해질 수 있다는 기존 연구나 통념에 일치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태 호기심은 중년 이후부터 다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50대 중반부터는 특정 주제나 관심사에 대해 깊이 몰입하고자 하는 상태 호기심의 점수가 꾸준히 증가하였습니다.

 

 


 

 

 

논문에 나오는 위 그래프는 나이와 호기심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A는 나이와 특성호기심으로 나이가 들면 일반적으로 호기심이 살짝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는 나이와 상태호기심으로 50대 이후 관심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상승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C.는 상태호기심과 특성호기심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내용으로, 평소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관심분야에 더 몰입하게 되고, 반대로 관심 분야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일수록, 평소에도 호기심 많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적 자극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호기심은 더욱 깊어지고 선명해진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뇌과학적으로도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상태 호기심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전두엽은 주의 집중, 계획 수립, 문제 해결과 같은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의미 있는 정보에 몰입하거나 집중할 때 활발히 작동합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도 특정 주제에 대한 호기심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것은, 전전두엽 기능과 호기심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 덕분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중년 이후의 뇌는 무작위적인 자극에는 덜 반응할 수 있지만,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주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정교하고 깊이 있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재구성됩니다. 말하자면, ‘양’이 아닌 ‘질’로 진화하는거죠. 특정 주제에 깊이 빠질 수 있는 능력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유연하고 기능적인 인지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표입니다. 이는 치매 예방, 인지 퇴행 방지와도 직결되는 매우 실용적인 정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태 호기심을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하고 자극할 수 있을까요?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실천을 권장합니다.


첫째, 깊이 있는 지적 자극에 꾸준히 노출될 것. 다큐멘터리 감상, 책 읽기, 공개 강연, 전문가 팟캐스트 등입니다. 둘째, 질문하는 습관을 기를 것. “왜 그렇지?”, “나는 이걸 왜 좋아하지?”, “이건 다른 것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할 것. 관심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인지적 확장을 일으킵니다.

 

이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흔히 50대 이후는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정신적 활력도 사그라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시기가 오히려 '선택적 몰입의 시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호기심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을 깊게 살아가기 위한 내면의 질문이며, 노화를 견디는 뇌의 근육입니다. 

 

 


 

 

참고문헌

Whatley, M. C., Murayama, K., Sakaki, M., & Castel, A. D. (2025). Curiosity across the adult lifespan: Age-related differences in state and trait curiosity. PLOS ONE, 20(5), e032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