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이 낙원이라.
Paradise is where I am.
가끔은 짧은 문장이 긴 설명보다 더 큰 힘을 지닙니다. 특히 한 사람의 신념과 세계관을 집약한 말일 경우, 이 짧은 문장이 인생 전체를 압축해 보여주는 창이 되곤 합니다. 볼테르의 “내가 있는 곳이 낙원이라”는 말도 그런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볼테르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볼테르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지식인이었습니다. 계몽주의란 '무지, 미신, 권위주의'에 기반한 체제에 도전하며, '인간 이성과 합리성, 지식과 과학을 중시한 사상적 흐름'입니다. 이 운동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볼테르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은 본래 이성적이며,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내가 있는 곳이
볼테르는 사색하는 철학자가 아닌,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득권층과의 갈등, 권위에 대한 비판, 종교적 권위에 맞선 논쟁 등, 그는 말과 글을 무기로 싸웠습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교, 그중에서도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톨릭 교회를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철학자로서 신앙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는, 신앙이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벌어진 억압과 부조리를 고발했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결국 불이익을 불러옵니다. 귀족과의 말다툼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왕과 귀족을 풍자한 글로 인해 유배당하기도 했으며, 결국 프랑스에서 쫓겨나 스위스, 영국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되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고, 작품을 발표하는 것조차 검열과 탄압의 벽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그가 말한 “내가 있는 곳”입니다. 그는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아닌,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서 검열과 투쟁의 현장에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곳을 ‘낙원’이라 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2. 낙원이라
낙원이란 일반적으로 고통이 없고 행복만이 가득한 공간을 뜻합니다. 그러나 볼테르가 말한 ‘낙원’은 그런 사전적 의미 이상의 깊이를 가집니다. 실제로 그의 삶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두고 당대의 또 다른 거장, 모차르트는 이렇게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악당의 괴수가 드디어 죽었다
이 말은 볼테르가 당시 얼마나 강력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가 공격한 대상은 단지 신앙이 아니라, 권력, 체제, 불의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험난한 삶을 살았던 그가 자신이 있는 곳을 ‘낙원’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이는 볼테르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낙원은 단지 감각적인 쾌락이나 편안함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실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그 자리일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더라도 그 고통이 신념에 기반했다면, 그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며 오히려 고귀한 일입니다.
즉, 볼테르는 자신의 싸움이 헛되지 않음을 알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바로 낙원이라 여긴 것입니다. 낙원은 어떤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사고하고 말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금 여기'였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 말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천국 개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죽음 이후의 삶, 즉 사후세계에서야 진정한 낙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그러나 볼테르는 그 세계관을 뒤집으며 말합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내가 머무는 이곳을 낙원이라 부른다.” 이 말은 단지 문학적 수사나 비유가 아니라, 신중하게 계산된 철학적 반론이기도 했습니다. 당대 사회에서 이 말은 대단히 급진적이며, 위험한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 고통 속의 웃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
볼테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캉디드』는 온갖 불행을 겪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이 세상은 최선의 세계’라는 당시 낙관주의 철학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냉소적 비판에만 있지 않습니다. 볼테르는 인간의 삶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합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낙원은 완전무결한 공간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는 볼테르를 이렇게 평합니다.
이렇게 유쾌하게 비관주의를 논한 책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이 슬프다는 것을 배우면서
사람들이 마음껏 웃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결국 “내가 있는 곳이 낙원이라”는 말은 단지 만족의 표현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관한 선언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가는 용기, 진실을 위해 싸우는 자부심, 불완전한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볼테르의 짧은 말 한마디는, 그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깊고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도 그처럼, ‘지금 여기’를 낙원이라 부를 수 있으려면 어떤 심리적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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